카톨릭 신자가 아닌 내게 교황의 방한이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단순히 내가 그의 주요 동선 가운데 한 곳인 서소문 근린공원의 근처에 머물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살고 있는, 카톨릭 신자도 아닌 나 조차도 그의 공식적인 일거수일투족을 하루가 멀다하고 전해 듣고, 볼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미디어의 힘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스마트폰과 SNS에 현대인들이 무의미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고 말씀하신 교황님의 (정확히 말하자면 교황청 SNS담당관이겠지만...) 공식 트위터 계정은 내가 본 것만 8개에 달하고 팔로워 수를 다 더하면 천 만도 넘어 보였다.
교황의 발언과 행동은 오늘과 같이 인터넷과 SNS가 보편화되기 전에도 신문, 방송과 같은 전통적 미디어를 통해 큰 파급력을 보여왔다. 언론과 민주화의 관계를 다루는 어느 논문을 보면 칠레의 권위주의 하에서 급격히 위축되었던 언론들이 교황의 방문과 그가 던진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보도함으로써 (아무리 군사정부라도 교황생중계를 막을 수는 없었으니)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키우고, 언론의 자유도 함께 커지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권위주의 하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한국 민주화에 미쳤던 영향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겠다.
의전상으로 국가원수급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사회적 담론에 미치는 교황의 영향은 다른 어떤 국가 원수의 방문 보다 더 크다고 하겠다. 일반적인 국가원수의 방문은 해당 국가와 한국의 국익을 놓고 벌이는 외교전의 성격이 강하지만, 교황의 방문은 종교 수장이라는 그의 위치 덕분에 '갈등의 치유', '보편적 인간애의 강조' 등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적어도 교황님이 무슨 '자원외교'를 하러 온다라는 식의 인식은 없으니까).
교황의 방문은 소위 공식일정이라 불리는 가시적인 부분과 그 뒤에 존재하는 (혹은 반도의 국민들에 의해 해석될) 비가시적인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당연히 그 비가시적 부분을 두고 담론의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 앞서가는 언론에서는 이미 '사대주의' 담론을 들고 나왔다. 교황께서 고통 받는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현정권을 애둘러 비판하길 바라는 시민들과 그런 의견을 전하는 언론들에게 미리 한 방을 날린 셈이다.
그가 무슨 말을 남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말씀이 너무나 넓고 고귀하며 자명한 것이어서 담론의 장에 있는 누구라도 자신들에게 듣기 좋은 쪽으로 해석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의 방문이 끝나고 나면 그가 던진 화두를 두고 한 차례 의미투쟁이 시작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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