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쓴 지 몇 년이 지났다. 그리고 오랜만에 기나긴 정적을 깨고 몇 자 끄적여 본다. 며칠 전 우연한 계기로 내가 예전에 이러이러한 블로그를 시작했다가 학교 일 때문에 바빠서 개점휴업 상태란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했다. 그것이 계기였을까? 떠나온 지 몇 년 만에 고향을 찾는 마음으로, 조금은 더 어렸던 그때의 내게 대화를 건네는 마음으로 별 볼일 없는 이 공간을 들여다본다.
서는 위치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고 했던가. 불과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때 포스팅한 잡글들이 우스워 보인다. 누구에게 거는 대화인지 알 수 없는 잡동사니 포스팅을 몇 개 읽다 보니 알 수 없는 부끄러움마저 느껴진다. 삭제할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 유치한 공명심도 내 삶의 일부였구나 기억하게 그냥 남겨두련다.
어쩌면 관계지향적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픈 욕구가 내 내면에 움트던 시기였던 것 같다. 초중고를 지방 소도시에서 보낸 내게 인간관계란 늘 물리적 시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식되곤 했다. 친한 친구는 집 근처에 사는 친구였고, 학교에선 앞 뒤 옆에 앉는 친구였다. 물론, 내 친구들도 대부분 이런 식으로 시공간적 근접성이 대부분의 친소관계를 규정하는 주요 요소였던 때였다.
4학년 2학기 때 시골의 작은 분교에서 시내의 비교적 큰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리고 그것이 어린 시절 내가 처음으로 겪었던 관계의 단절이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다음은 고등학교로...... 나이가 하나 둘 많아지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커다란 학교 운동장이 작아진 듯한 착각을 하곤 한다. 이렇게 내가 인식하는 시공간의 범위도 점점 확대되어 갔지만 여전히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내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였던 것 같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늘 함께일 것 같은 좋은 친구와 나를 묶어 주던 시간과 공간이 유한한 것임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그 유한함이 야속하고 슬펐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그 시간과 공간을 재생산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그 시간과 공간을 함께 했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 "하나" 따위의 조금은 유치한 서사를 동원해 그 관계를 부여잡고자 했던 기억도 참 많았다. 열아홉을 넘어 스무 살 대학이란 공간과 시간으로 내 삶이 옮겨 갔을 때도 십 대란 시공간을 공유했던 이들과의 관계 유지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 보면 그런 '관계 집착자'의 애절함이 많은 이들에겐 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다 크고 나서야 들었다. 함께 했던 시공간을 재생산하는 애틋한 노력에 에너지를 쏟기 어려웠던 친구들에게 "단합"이니 "동기사랑"이니 하는 언어가 얼마나 폭압적이었을까?
반이민자 생활도 십 년이 된 듯하다. 가만히 있어도 나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친구로 규정해 버리는 것이 어쩌면 무례할 수도 있는 시간과 공간에 있다. 그래서 내 이십 대 대부분의 시공간을 공유했던 한 친구가 나처럼 남반구의 작은 도시에서 정착했다는 것이 내겐 일상의 작은 위안이 되곤 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위안"이란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내게만 위안이고 상대에겐 불편함이었나 보다. 녀석은 어쩌면 이 새로운 시공간에서 재회한 우리의 관계를 과거가 아닌 현재의 맥락에서 새롭게 규정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8천 킬로나 떨어진 그곳의 15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들을 오늘의 이 자리로 소환하는 내가 불편했던 것 같다. 지난 네 달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작은 넋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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