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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기사: http://www.theaustralian.com.au/news/opinion/activists-burn-national-goodwill-along-with-flag/story-e6frg71x-1226255708905
Picture: Gary Ramage Source: Herald Sun
어제 천막 대사관의 시위는 난데없이 우리 사회의 분열을 초래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원주민 문제라는 중대한 사안을 훨씬 넘어서는 교훈을 일깨웠다.
유리창을 두드리고, 모임의 장소를 포위하고, 욕설을 하며, 심지어 창을 겨누기도 하는 등의 위협적인 행동들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우리 나라는 모든 시민들이 고유의 의견을 가지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권리를 존중한다. 하지만 타인의 사업을 방해하거나, 폭력을 유발하거나, 지난 목요일의 사건이 잘 보여주듯 다른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위협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서는 안된다. 용감하고 이타적인 호주인들을 기리는 초당적 행사에서 이런 위협적인 행위로 총리와 야당 대표를 직접 겨냥했고, 더구나 국경일에 그랬다는 것은 그저 우리 사회의 온화함을 더욱 침해할 뿐이다.
혼란 속에서 총리가 잃어버린 신발을 조속히 돌려주고 충분한 사과를 하는 대신에 시위대는 그것을 트로피인냥 과시했고 그것을 이베이 경매에 판매하려 들었고 이후 시위에서는 신데렐라의 신발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우리 국기를 불태울 때 시위대를 향한 국민들의 호의도 함께 불탔다. 이는 결코 대다수의 호주 원주민을 대변하지 않을 시위대가 그저 자신들의 오류를 심화시키고 올바른 동기마저 손상시킨 탓이다. 표면적으로 사건의 원인은 1972년 큰 대립 속에서 영토 주권에 대한 요구로 설립된 천막 대사관이다. 토니 애봇이 시사한 것처럼 그 이래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영토 주권에 관한 법안이 통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70년대 활동가들은 상상 조차 못했던 '마보'와 '윜' 판결은 이런 권리를 자동으로 누리도록 선고했다. 이런 권리를 없애는 법안을 만드는 대신에 우리 나라는 원주민들에게 그들의 유산에 대한 적절한 권리를 부여하는 법안을 만드는 복잡하고 비싼 값의 정당한 길을 택했다. 원주민 문제는 정치적인 고려와 우리 국민 의식의 전면으로 부상했다. 이는 2008년 오스트렐리아 데이에 야당 대표의 초당적 지지까지 받았던 원주민에 대한 공식 사과 때 절정에 달했다.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원주민의 비극과 정책적 문제는 왜 영토주권의 획득과 정책구상 및 상징적인 승리가 평균 수명, 교육 수준 및 고용률의 증가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최우선 국정 과제이다. 여기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행동,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만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토니 애봇의 주장대로 그 사건은 천막 대사관의 분노를 넘어섰다. 어제 뉴사우스웨일즈 전 수상인 노동당 소속의 밥은 천막 대사관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워렌과 믹과 같은 용감하고 현명한 원주민 지도자들은 지난 시위가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향한 불의의 일격이었는지 언급했다. 위협적인 행동은 반대파를 침묵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만약 누군가 부숴져야 한다고 주장할지라도, 그들은 어떤 위협도 받아서는 안된다. 슬프게도 지난 해 탄소세 반대 운동에서 나타난 성차별적 문구에 분개하던 많은 정치인들과 미디어가 최소한 같은 잦대로 비판할 것으로 기대됐던 금주의 물리적 언어적 폭력 앞에 말문이 막힌 듯 보이는 것은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다.
메릴 탕카드, 이안 플리머 또는 앤드류 볼트는 현대의 비타협적 좌파가 자신들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한 표현의 자유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우려할만한 경향이기에, 우리 '위크엔드 오스트렐리안'에서 계속해서 알리고 저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만약 오스트렐리아 데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면, 우리는 열린사고와 언론의 자유 그리고 상식적 판단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금주에 야기된 갈등은 우리 사회 전반의 일반적인 행태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원주민을 헌법상 인정하는 국민투표를 고려할 때 그와 같은 갈등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다. 그 문제는 이미 전문가 패널들의 과도한 기대에 따른 실패로 어려움에 봉착했다. 캔버라의 시위대는 실현 가능성을 더욱 멀리 놓아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즉각적인 정치적 갈등은 활동가들과 극좌파 지지자들이 원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운 정치인 애봇을 비난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비난은 그가 견뎌내야할 것이 아니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길라드 총리는 목요일의 어려운 상황하에서 확실히 침착함과 결의를 보였다. 하지만 시위대에게 애봇 대표의 참석에 관해 알리는데 그녀의 언론 보좌관이 연루된 것이 밝혀지면서 다른 정치적 측면이 더해진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인 이런 무책임한 행위를 총리가 인지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총리를 정치적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그녀에게 정치적인 낭패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보좌관의 사임을 승인한 것은 그녀가 옳았고, 정확히 무엇이 밝혀졌는지는 여전히 미궁으로 남았다. 이번 시위는 화해를 향한 먼 길에 있어 민족간 긴장이 위험하고 일촉즉발의 상황임을 시사했다. 우리는 정치적인 편가르기나 표리부동함을 뒤로하고 솔직하고 자유롭게 이 이슈를 토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