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의 편린

내 추억의 컴퓨터 마이티 286

세월부대인 2012. 6. 18. 01:05

◆ 옛날 생각


그냥 가끔씩, 혹은 현재 생활이 어딘가 녹녹치 못 할 때, 사람들은 종종 지난 시간들을 미화하곤 한다. 그 형태는 각양각색이지만, 추억이란 이름으로 모두의 가슴 속에 하나 둘 자리하고 있다. 어릴 땐, "내가 너만할 땐......"으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그저 진부한 옛날 이야기라 생각했었는데, 이따금씩 지인들과 그런 식의 대화를 하며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 나도 어른이 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옛날 이야기의 묘미는 그 것이 얼마나 오늘의 모습과 다른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그 시대엔 최신, 유행 등의 수식어를 달고 있었을 것들이 오늘의 눈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을 때 오는 재미때문일 것이다. 스포츠 뉴스에서 종종 보게 되는 '10년 전 톱스타 사진' 등이 그러하다. 


누구나 삶의 궤적이 늘어갈수록 이런 이야기 보따리도 늘어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엔 내 또래는 이제 겨우 '한 세대'라 불리는 시간을 살았는데, 유독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제법 이런 저런 소재들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를 살아왔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포스팅은 그런 옛날 이야기 시리즈의 하나일 내 생애 첫 컴퓨와 관련된 것이다. 



◆ 금성 마이티 286 그리고 웅진 터미네이터


1992년 초,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것은 어쩌면 '사건'이었다. "도대체 쌀이 몇 가마니냐"며 할머니는 혀를 내차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 컴퓨터를 구입한 것이다. 무려 4년 할부로 구매했는데, 당시 가격이 거의 200만원에 육박했다.


http://omaro75.blog.me/20123239178



컴퓨터랑 무슨 교육? 그 당시 웅진출판사에서 야심차게 개발한 <웅진터미네이터>란 교육 프로그램 이야기다. 5.25인치 360Kb 플로피 디스켓 수 십장으로 이루어진 혁신적인 컴퓨터용 학습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내에 게임적인 요소를 적절히 배합해 만든 나름 괜찮은 제품이었는데, 아마도 시대를 너무 앞선 개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웅진 터미네이터>는 그룹에게 무려 100억원의 손해를 끼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하니까...... ㅎㅎ 



웅진그룹 E-book



컴퓨터를 구입할 때 선물로 받았던 웅진 출판사의 <월간 까치>란 어린이용 생태 잡지도 1년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까치> 역시 재정난으로 폐간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웅진은 너무 시대를 앞서간 기업이었던 것 같다. ㅎㅎ

  


◆ DOS=High, Umb


마이티 286은 초기의 교육 목적 - 즉, 국어, 산수 공부 - 보다는 컴퓨터 공부에 매진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386, 486의 등장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 보며 새 컴퓨터를 갖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매달 할부 금액을 은행에 납부하러 가시던 부모님을 보면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커져가는 내 첫 컴퓨터에 대한 애증은 결국 그 녀석을 '최대화' 시키려는 여러 가지 노력과 연구(?)를 이끌었다.  얼마 안되는 새뱃돈을 투자해 컴퓨터 책을 사보기도 했고,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무려 7만 원에 구입해 장착도 했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아직도 내 컴퓨터 정도는 조립해서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그렇게 무모하게 투자했던 덕분일 것이다.


http://yerihyo.wikidot.com/game:uncharted-waters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한 창 컴퓨터를 가진 친구들 사이에서 대항해시대 2가 유행이었다. 혹시나하는 될까 싶은 생각에 내 286에서 실행을 해봤지만 되지 않았다. 절망이었다. 친구 녀석들은 매일 아침이면 '조안 페레로'와 술집 여급 이야기 따위를 하는데, 도무지 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ㅜㅠ 그런데 재밌는 것이 486 컴퓨터를 가지고 있던 친구 한 명도 같은 증세로 안되는 것이었다. 연구 모드에 돌입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EMS 메모리와 관련된 것이란 사실을 알게되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EDIT CONFIG.SYS, AUTOEXEC.BAT 명령어를 두드리며 1MB였던 (2MB도 안되는;;) 내 286 컴퓨터의 메모리 가운데 640Kb의 기본 메모리 외에 남은 메모리를 상위 메모리와 중첩확장 메모리로 분배하는 데 성공하며 마침내 나도 '카탈리나 애란초' 이야기에 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고급 기술(?)을 다른 친구들에게 전수하며 대항해시대를 할 수 없었던 386, 486 친구들도 모두 드넓은 대서양으로 초대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다. 40메가의 하드 디스크가 언제부턴가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 당시 나름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소위 "뻥튀기"를 이용해 하드를 60메가로 만들었던 일. RAMDRIVE.SYS를 이용해 위험한 데이브를 초고속으로 실행하기. 그리고 지금도 개선되지 않은 '하드포맷 중독'도 그 때 시작되었다. PCTOOLS를 이용해 에디터 없는 게임의 돈 늘려주기 등 각종 잔기술(?)을 전파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나름 컴도사로 통했던 시절도 있었다.



◆ 빛의 속도로 발달하는 기술


컴퓨터 기술은 다른 어떤 기술과 비교해도 그 발전 속도가 빠르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불과 10년 전 이야기만 해도 컴퓨터를 조금 아는 사람들 사이엔 재밌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내 장래희망이 컴퓨터 프로그래머에서 기자로 넘어가던 무렵, 난 생애 두번 째 컴퓨터로 당시 전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던 세진 컴퓨터를 구매했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Cyrix사의 6X86 제품이었다. 가격은 마이티 286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성능은 비교할 것이 못되었다. 문득,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계속 떨어지는 가격을 보면 도무지 컴퓨터는 살 것이 못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 번 더 새로운 컴퓨터를 만나가 되고,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서 그 때 투자했던 비용들이 허투루 쓴 것은 아니란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동안 습득해 온 짧은 지식 덕분에 내가 누리는 무형의 이익들을 생각하면 그러하다. 그 공의 절반은 내가 '뻘짓' 하다가 286 메인보드와 하드디스크를 고장내 수리비로 수 십 만원이 들었을 때도 "고장 내면서 배우는 것"이라 말씀하셨던 아버지께 있지 않을까 ^^